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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최화인

[최화인의 디지털경제] 화폐 발행의 중앙성과 결제의 분산성

그간 우리에게 돈이란 동전이나 종이처럼 눈에 보이는 물리적 형태를 갖춘 화폐였다. 비트코인이 등장하고 난 후 디지털화폐의 새로운 신기원을 열었다. 하지만, 전자적 데이터에 불과한 비트코인 화폐성을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다.



암호화폐 화폐성을 실존적 의심(디지털 데이터가 가치 저장성이 있는가에 대한 의구심)하는 것과 같은 화폐 형태의 회의론은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1271년 베네치아 상인 마르코 폴로는 중국 원나라에 갔을 때 시장에서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종이돈으로 물건을 사고파는 것을 봤다. 이후 고향에 돌아와 ‘동방견문록’에 중국 지폐 사용 일화를 기록했다가 동시대 유럽 사람들에게 거짓말쟁이, 미치광이, 사기꾼으로 몰리는 처지가 됐다.


돈의 액면 가치와 실질 가치가 상응하는 금속주화를 사용했던 당시 유럽 사람들로서는 한낱 종이가 가치를 담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종이에 무슨 가치가 있어서 물건을 사고 사람을 고용하는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냐는 것이었다.


400년 뒤인 1660년 동전을 만드는 구리가 부족해지자 스웨덴 스톡홀름 방코에서 어음 형태 지폐를 발행하기 시작했다. 이후 유럽도 점차 지폐 사용이 일반화됐다. 지폐 역시 비트코인과 마찬가지로 황당무계한 거짓말처럼 여겨지다 어느 순간 화폐로 통용되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과정을 거친 셈이다.


돈은 그 자체로 가치를 갖지 않는다. ‘지금 한 나라 두 대통령’이라는 초유의 혼란에 빠져 있는 베네수엘라 국민이 법정통화 볼리바르를 땔감으로 사용하거나 공예품 재료로 사용하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돈의 ‘내재가치’는 돈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발행한 국가 신용에서 나오며, 궁극적으로는 그것을 사용하는 사회적 신뢰에서 나온다. 베네수엘라 볼리바르는 화폐 내재가치의 사회적 신뢰가 깨졌기 때문에 더 이상 돈으로 통용되지 못하는 것이다.


비트코인 화폐성도 마찬가지다. 탈중앙화된 분산원장을 사용하는 블록체인 기술에 사회적 신뢰가 더해져 돈으로서 위치가 공고화되고 있다. 돈으로 여기면 돈이 된다. 가치가 있어서 가치를 갖게 된 것이 아니라, 가치 부여를 통해서 가치를 갖게 되는 것이 돈의 본질이다.


◇ 결제방식 변화가 이끈 금융 디지털화


우리는 이미 현금보다 신용카드나 직불카드 형태의 전자적 결제가 익숙한 시대에 살고 있다. 사람들이 현금을 들고 다니지 않게 되면서 소매치기나 강도 대신 보이스피싱이나 스매싱, 해킹, 디도스 공격 같은 사이버 금융범죄가 급증한다.


현금결제에서 전자결제로 돈을 사용하는 방식이 바뀌면서 금융범죄 유형도 변화되지만, 보다 중요한 변화는 돈 그 자체에서 일어나고 있다. 돈 형태를 바꾸자는 움직임이 점차 현실화한다.


이는 현재 금융서비스의 비효율적 구조와 관련됐다. 금융 결제 시스템은 개별 영역은 디지털화돼 있지만, 전체 금융거래 프로세스는 분절돼 있어 매 단계마다 중개역할을 하는 기관이 필요하다.


그런데 거래 매개가 되는 화폐가 디지털화되면 거래 과정에서 발생하는 결제 리스크가 사라진다. 중개 기관이 간소화되는 이유다. 은행 간 국제 거래에서 돈이 들어오지 않거나 받은 돈이 위폐일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훨씬 안정되고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다. 기관 간 거래에서 신용보증기관이 필요 없다. 중개 기관이 줄어드니 비용과 시간이 줄어드는 것은 말할 나위 없다.


금융이 디지털화되고 통화가 전자화되는 금융 산업 패러다임 전환은 금융 주체 역할과 비중 변화를 의미한다. 통화가 디지털화되면 은행 계좌가 바로 지갑이 되기 때문에 결제 프로세스가 아주 간소화된다. 결제가 간소화될수록 중간에 개입되었던 여러 금융기관 역할이 불필요해진다. 때문에 이들 업무 분야가 줄어들고 기능도 축소될 수밖에 없다. 궁극적으로는 전 세계적으로 금융권의 대규모 구조조정이 발생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 디지털 법정화폐를 발행한 국가는 없다. 그 때문에 디지털 통화 발행과 관리 등 운영과정에서 어떤 리스크가 발생할지 아직 모른다. 만약 중앙은행 보안시스템이나 데이터 관리에 문제가 생기면 순식간에 국가 경제 전체가 마비될 수도 있다. CBDC 발행이 조심스러운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디지털 금융 시대를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


디지털 통화 발행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시범사례를 통한 충분한 사전점검이다. 미국이나 유럽은 달러나 유로화 등과 같은 법정화폐와 1:1로 교환되는 스테이블 코인(stable coin)을 유통시켜 봄으로써 디지털 통화가 발행·유통되는 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있고, 보완해야할 부분이 무엇인지를 점검하는 기회를 갖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역화폐를 디지털화시켜 통합 플랫폼에서 유통시켜봄으로써 운영과정에서 발생하는 리스크를 확인하고 개선해나가는 시범사업으로 활용할 수 있다.


행정안전부는 지역경기 활성화와 순환경제 구축을 위해 작년 66종 총예산 3700억원 규모였던 지역화폐를 올해 120종 2조원 규모로 확대시킬 예정이다. 지역화폐 발행 규모와 종류는 급격히 늘어나지만 효과성을 파악할 정확한 데이터는 없다. 대부분 지역화폐는 지역 공무원 포상금이나 청년수당 등에 소비되며, 그마저도 일회성 사용으로 그치고 만다. 온라인에서 상품권깡도 적지 않다.


이처럼 지류로 발행해서 구매 영역을 지역으로만 한정하는 한 지역화폐 발행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 차라리 디지털 형태로 발행해 온라인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지역화폐 구매와 사용을 활성화하는 방법이 더 낫다. 대신 구매 시 지원하던 10% 혜택을 해당지역에서 사용할 경우 10%를 포인트로 추가지급하면 된다. 중앙단위 지역화폐 통합 거래 플랫폼을 제공하고 이를 관리 감독함으로써 디지털 통화 운용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를 검증해보는 것이 가능하다.


여전히 정부가 중앙은행에서 어떤 형태의 화폐를 발행할지에 골몰하고 있을 때 이미 시장은 어떤 형태의 결제시스템을 제공할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발행 중앙성이 결제 분산성과 경쟁을 하게 되는 시대가 올 것이다. 디지털 금융 시대가 도래하면, 영향력을 결정짓는 핵심요소는 중앙에서 어떤 돈을 발행하는가보다 최종 사용자가 어떤 결제시스템을 선택하는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무게중심은 다양한 화폐 중에서 어떤 화폐를 선택하느냐보다, 다양한 결제방식 중에서 어떤 결제서비스를 이용하느냐로 옮겨올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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