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6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 당장 내년으로 다가온 암호화폐 과세에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홍남기 기재부 장관에게 암호화폐를 자산으로 인정하느냐고 묻자 "주식은 경제에 도움이 되는 생산적 자금을 모으는 금융자산이지만 가상자산(암호화폐)은 경제적 가치가 있는 단순 자산에 불과하다"고 대답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일까. 거칠게 직역하자면 “주식은 경제에 도움이 되지만 암호화폐는 되지 않는다. 그러나 ‘경제적 가치’가 있는 단순자산으로는 인정해줄 테니 세금은 내놓으라.”는 뜻 아닐까.
돌이켜보면 홍남기 장관만 그런 것은 아니다. 금융위원회 전직 수장이었던 은성수 위원장도 암호화폐는 “내재가치가 없는 투기의 대상이기 때문에 정부가 보호해 줄 필요가 없다”고 말해왔고, 고승범 현 위원장도 “지금까지의 금융위 기조를 바꾸지 않겠다”고 밝혔다. 한국은행 이주열 총재도 암호화폐는 “내재가치가 없다”며 두 기관과 뜻을 같이 했다.
정부 내 관련된 모든 기관장들이 “암호화폐는 내재가치가 없고, 산업적 기여를 하지 못하는 투기성 상품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 발언들은 역설적으로 정부가 얼마나 암호화폐의 기술적 속성과 산업적 역할을 이해하고 있지 못한가를 명확히 보여준다.
암호화폐는 블록체인 관련 스타트업 및 관련기술을 활용하고자 하는 기업이 투자금 모금을 위한 수단으로 발행된다는 점에서 주식과 같은 역할을 한다. 그러나 업력이 짧고 자본이 약한 스타트업들은 주식시장에는 진입할 수 없다. 그래서 암호화폐를 발행한다. 물론 스타트업이기 때문에 업력이 오래된 기업이 발행하는 주식보다는 투자 리스크가 훨씬 크다.
그래서 암호화폐의 내재가치는 해당 암호화폐를 발행한 프로젝트의 기술적 혁신성, 서비스 활용성, 산업적 확장성으로 평가받게 된다. 거래소에 상장된 암호화폐 중에서 갑자기 급등하는 종목은 대개 기반 프로젝트가 기술개발 공시를 했거나 신규서비스 출시, 시장 확대, 새로운 투자자 등장 등의 호재가 나타났을 때다. 어떤가. 가격 상승의 요인이 주식과 똑같지 않은가.
오히려 암호화폐가 급등하면 해당 기업의 주식이 동반 상승하는 사례가 점차 확대되고 있다. 다날핀테크가 페이코인을 발행해 서비스 영역이 확대되자 페이코인 가격이 급상승하면서 다날핀테크의 주가가 3일 연속 상한가를 기록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기업의 투자금 모집과 발행 기업 혹은 프로젝트의 가치를 끌어올리는 하는 암호화폐의 역할을 주식과 다르다고 말한 홍남기 기재부 장관의 발언이 이런 실상을 알고 말한 것인지 정말 궁금하다.
또 암호화폐는 특정 플랫폼 혹은 메인넷의 가상자산이 활성화되면 관련 산업의 전반적인 흐름을 바꿀 만큼의 파급력을 보이기도 한다. 스마트 컨트랙트를 가장 먼저 도입한 이더리움 플랫폼은 가상자산인 이더(Ether)가 활발히 거래되면서 이더리움을 기반으로 발생한 다양한 디앱 서비스들이 지속적으로 시도될 수 있었고, 그 결과 이더리움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금융적 시도가 진행되었다.
현재의 NFT 열풍과 디지털금융으로의 전환은 이더 거래 활성화로 이더리움 플랫폼 내에서 De-Fi, Dex, 스왑, 주식·채권의 자동청산 등의 다양한 금융서비스가 시도되면서 초래된 변화다. 만약 이더가 발행되지 않았다면, 활발히 거래되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은 금융 패러다임이 전환이 가능했겠는가. 탈중앙화된 금융서비스와 마이크로 자본주의가 진행될 수 있었겠는가. 결단코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암호화폐는 기존 플랫폼의 기능변화와 이용자들의 체류시간을 늘리고 서비스 다각화에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서도 각광받고 있다. 이제는 ‘메타’로 이름이 바꾼 페이스북이 리브라 발행을 추진했던 이유도 더 많은 이용자들을 끌어들이고 더 오래 페이스북 안에 체류시키기 위해서였다.
리브라 사용이 확대되면 페이스북의 서비스 영역도 함께 확대된다. 세계 어디를 가든 페이스북 접속이 가능한 지역이라면 현금이나 카드 없이도 항공, 교통, 숙박, 쇼핑 결제가 가능해져 별도의 현지 화폐를 쓰지 않아도 된다. 리브라가 글로벌 통화가 되는 셈이다. 당연히 미 의회를 비롯한 전 세계 중앙은행들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쳤고, 페이스북의 원대한 계획은 아직까지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 글로벌 기업들과 서비스업체들은 이미 앞 다투어 자체 플랫폼 내에서 유통되는 개별 암호화폐를 만들고 있다. 페이스북과 마찬가지로 그들도 신규 이용자들을 끌어들이고 서비스 영역을 확대해나가는 수단으로써 암호화폐를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유사한 사례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야놀자, 신세계 면세점, 메가박스, 진에어, CU 편의점 등이 사용하고 있는 밀크 코인은 블록체인 기반의 마일리지 통합 플랫폼을 구축했다. 이를 통해 개별 기업의 서비스 이용 시 적립되는 마일리지 포인트의 활용도가 떨어지는 문제점을 해결하고 이용자들의 마일리지 적립 및 활용의 선택지를 늘리도록 함으로써, 사장되던 포인트를 다양하게 이용할 수 있게 해주었다. 원하면 개별 기업의 포인트를 밀크로 교환해서 상장된 거래소를 통해 언제든 현금으로 바꿀 수도 있다. 덕분에 밀크 플랫폼에 참여한 기업은 서로의 이용자를 공유하는 시너지 효과와 공동 마케팅 효과가 창출되는 협업 구조를 구축하게 되었다.
밀크 플랫폼의 서비스 영역이 넓어지면 참여 기업도 함께 시장이 확대되고, 참여 기업의 서비스 및 시장이 확대되면 플랫폼도 함께 성장하는 상생구조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이다.
이처럼 암호화폐는 발행 기업 및 프로젝트의 투자금 유입 창구이자, 다양한 서비스 출현 및 기술개발의 동인이 되며, 이용자 유입의 매개가 돼 새로운 시장과 산업을 견인하고 있다. 이런 쓸모가 암호화폐의 내재가치가 아니라고 누가 말할 수 있는가.
정부가 2017년부터 지금까지 4년이 넘는 시간동안 여전히 암호화폐의 내재가치 부재를 주장하는 것은 아무래도 공무원 및 산하기관 직원들의 암호화폐 직접거래를 금지한 탓이 큰 것 같다. 도통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에서 무슨 수로 암호화폐를 이해할 수 있겠는가. 스마트폰을 한 번도 사용해보지 못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스마트폰 규제를 만들고 있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누구는 전화기로, 누구는 전신으로, 누구는 카메라로, 누구는 인터넷에 적용해 규제하려 할 때 그 모든 기능을 가진 혹은 그 이상의 기능을 가진 스마트폰을 도대체 어디에 포함시킬 수 있겠는가. 스마트폰은 오로지 스마트폰으로서만 규정되고 그 규정에 맞춰 규제될 수밖에 없다. 암호화폐도 마찬가지다. 오로지 암호화폐의 기술적 특성과 산업적 역할에 맞춰 규정되고 규제되어야 한다.
Commentaires